더 어렵게 더 단순하게 / 김한나라


보고 만든다. 보고 그린다. 이 심플한 관계 속에서 작가는 조각의 내부를 탐구한다. 통나무의 형태를 조금씩 쳐내는 과정은 형태와의 사투로 ‘잎사귀를 어떻게 깎을 것인가’ ‘꽃을 어떻게 깎을 것인가’하는 문제를 마주한다. 이 ‘어떻게’는 보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가깝게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며 마주한 형태를 재료를 거쳐서 다른 상태로 전이 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사물의 형태와의 유사함을 추구하려는 방향과 멀어지며 나무가 원재료의 상태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상태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사물의 형태를 참조한 후, 조각 자체의 형태, 리듬, 볼륨을 들여다보게 된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 과정은 재료와의 싸움이다. 재료에서 가능한 옵션은 형태를 변형하는 것에 개입하고 작가는 그것을 통하여 제3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이는 ‘나무로 보이기’ 와 ‘나무로 보이지 않기’ 사이의 줄다리기가 된다.

모양을 보고 깎는데 모양을 내지 않는다. 꽃에서 시작했지만 꽃이 아니게 된다. 나무에서 가능한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나무가 아닌 것이 된다. 추상적인 지점이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작가가 형태를 해석한다는 것은 재료를 해석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익숙한 재료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작가는 ‘보고 만들기와 나무 재료의 탐구’라는 프레임 속에서 조각을 만들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작가들이 나무 조각을 만들었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동시대성을 바라보며 새로운 조각의 방법론을 고안해내는 것의 반대편에 있다.

올드한 재료를 올드한 방식으로 취한다. 회화는 오랜 기간 숙련하고 터득해나가야 하는 일이지만 현대 조각의 동향은 숙련과는 조금은 멀어진 듯하다. 많은 작가들이 방법론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비평적으로 접근한다. 재료가 의미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여 다른 맥락을 끌어올 수 있거나, 맥락에 적합한 재료라는 이유로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는 이와는 다른 지점에서 과거로 돌아가듯 온전히 재료와 밀착하여 나무 조각을 깎는다. 나무 조각을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자신에게 체화 시켜간다.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전달하려는 층위를 담은 나무 조각이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그것을 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무 조각은 금방 만들고 금방 소진되는 것들과 반대 지점에 있다. 작가는 조각에서 방법론을 없애고 과정을 장인적으로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각은 역으로 더 쉬워지고 더 심플해지고 있다. 무거워지고자 했을 때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모든 가지를 쳐내고 가장 심플해졌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반대로 되기’. 작가가 의도하진 않았던 나무 조각의 전략이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생각의 싸움이 아니라 손을 통해 시각적으로 ‘좋음’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좋음에 다가가려면 다시 재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과연 나무가 지금까지 사용되었던 방식을 벗어나고 있는가?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은, 재료와 형태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루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과거의 답습과는 별개로 ‘좋음’의 방향성이 상상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재료와 형태가 점차 맞물리는 관계를 통해 조금씩 전진해가며 ‘좋은’ 조각을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