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일 때 목조를 참 좋아했다. 그 당시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끌과 나무망치를 사용해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를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거기에는 그 어떤 사유의 흔적이나 내적 상흔도 없었다. 난 그냥 작은 소망을 나무에 담고자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했던 소망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조각과 소조를 다루는 나의 태도에 그 이유가 있음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꽤 오랫동안 조각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간간이 조각 전시가 있었지만 특별히 주의 깊게 보지도 생각지도 못했다. 비단 나만 그랬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난 우연히 불상에 관한 기획전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봤었다. 나는 그곳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을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머물게 하려 눈으로 확인하고도 또다시 불상 근처를 배회했다. 조금 다른 기억이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날,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전설을 듣고 탑과 불상의 숫자를 세며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이십 대의 여름에 내가 보며 느낀 풍경은 푸른 하늘과 듬성듬성 보이는 마른 풀, 그리고 마사토를 흩는 신발의 뒤꿈치 소리가 기억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강석으로 빚어낸 작은 불상들, 그들의 온화한 미소는 빛의 흐름에 따라서 공간의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물론 현대작품이 아닌 국보급 유물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지만, “좋은 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난 작업실 한편에 놓여진 나무조각과 소품의 형상을 띤 것을 봤다. 그것은 조각적인 느낌보단 나무를 조각도로 다듬어 놓은 듯이 마무리되어 있었다. 거기엔 조각을 하는 행위보단 본인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나무라는 재료와 오브제를 사용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나는 작업 설명을 듣는 내내 그 친구의 그림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난 설명적인 작업이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가 시끄럽고 마음이 복잡해서 일까! 물론 그것도 한 부분을 차지하더라도 아마 취향인 듯하다. 사실 그는 그림을 참 쉽게 잘 그린다. 분명한 것은, 그리려는 대상과 작품 속에 이야기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는 데에도, 표현은 설명적이거나 묘사되어 있지 않고 직관적이었다. 몇 개월 후 작업실에 서 있는 나무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도 그 나무 조각에선, 평면작업에서 보여지는 본인만의 직관적인 표현, 즉 나무를 다루는 기술에 사유의 흔적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조각은 빛의 충돌에 의한 드러남과 숨김을 표현함에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는 조각가의 몸을 닮아 가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셔츠에 톱밥이 이슬처럼 붙어있는 채로 서 있는 실루엣을 보면 예전의 그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작업과 몸짓은 이전의 것을 확실히 낯설게 함으로 본인의 제스처를 들어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선인장”은 공간에 있었다. 난 그것을 보면서 그가 ‘움켜쥔 손안의 나무’를 생각했다. 움켜쥔 채로 사유를 하고, 감정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상상을 해봤다. 비록 이전 작업과 다르게 내러티브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몸으로부터 전해지는 형식과 외적 형상의 조화는 공간에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부분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고전 양식을 보면 빛과 그림자는 사슬이라는 형식에 묶여져 있다. 근대 회화에 와서 비로소 형식은 해체되기 시작하고 명암보단 색채가 우리의 시선을 장악했다. 누가 말했는가! “색채가 가장 풍부한 그 순간이, 형태가 가장 완전한 때이다.” 어쩌면 그는 나무 “선인장”위에 색채를 입히고자 한 순간, 이 문장을 기억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색채를 머금은 목조를 보았다. “직관적인 몸의 동작으로 나무에 형상을 부여할 때, 그렇게 운동의 인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외형이 구체적인 실재를 대신할 때이다.” 이 문장으로부터 그는 분명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는 시각적인 외형이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는 양괘감에 의해서 인식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색채를 조각에 적용한다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색채에 의해 형상이 새롭게 혹은 다르게 보여진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중요할까! 일을 진행하며 사유의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이! 잘 모르겠지만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없는 듯한 그의 모습이, 오히려 표현하려는 대상에 더 다가가게 만드는 힘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인상적이다. 이에 더해서 나는 형태와 색채, 그리고 공간의 빛을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은은하게 입체감을 더하는 조명효과와 운주사터에서의 음과 양을 하나로 엮은 빛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개인적으론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모든 형상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물이냐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빛의 조도가 필요하다. 빛의 성질에 따라서 사물의 형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감각적으로 안다. 그래서였을까! 난 “천불천탑” 주위를 맴돌면서도 마른 땅 위의 메마른 가시덤불이 나에겐 더 매력적인 대상으로 비쳤다. 그렇듯 모든 입체작업은 재료와 빛의 충돌에 따라서 작업의 성질과 공간이 다채롭게 변하기도 한다. 그가 색채를 나무에 칠한다는 것은 실재에 다가서려는 행위라기보단 빛의 충돌과 간섭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뉘앙스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선인장”에 핀 색채를 평면으로 재현했다. 이젠 그의 그림은 직관적이지만 직관적일 수 없을지 모른다. 평면으로 재현된 “선인장”은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색채의 현상에 다가서려 하는 듯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어쨌든 작업을 하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일단 생각은 접자.
학생일 때 목조를 참 좋아했다. 그 당시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끌과 나무망치를 사용해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를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거기에는 그 어떤 사유의 흔적이나 내적 상흔도 없었다. 난 그냥 작은 소망을 나무에 담고자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했던 소망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조각과 소조를 다루는 나의 태도에 그 이유가 있음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꽤 오랫동안 조각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간간이 조각 전시가 있었지만 특별히 주의 깊게 보지도 생각지도 못했다. 비단 나만 그랬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난 우연히 불상에 관한 기획전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봤었다. 나는 그곳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을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머물게 하려 눈으로 확인하고도 또다시 불상 근처를 배회했다. 조금 다른 기억이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날,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전설을 듣고 탑과 불상의 숫자를 세며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이십 대의 여름에 내가 보며 느낀 풍경은 푸른 하늘과 듬성듬성 보이는 마른 풀, 그리고 마사토를 흩는 신발의 뒤꿈치 소리가 기억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강석으로 빚어낸 작은 불상들, 그들의 온화한 미소는 빛의 흐름에 따라서 공간의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물론 현대작품이 아닌 국보급 유물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지만, “좋은 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난 작업실 한편에 놓여진 나무조각과 소품의 형상을 띤 것을 봤다. 그것은 조각적인 느낌보단 나무를 조각도로 다듬어 놓은 듯이 마무리되어 있었다. 거기엔 조각을 하는 행위보단 본인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나무라는 재료와 오브제를 사용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나는 작업 설명을 듣는 내내 그 친구의 그림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난 설명적인 작업이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가 시끄럽고 마음이 복잡해서 일까! 물론 그것도 한 부분을 차지하더라도 아마 취향인 듯하다. 사실 그는 그림을 참 쉽게 잘 그린다. 분명한 것은, 그리려는 대상과 작품 속에 이야기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는 데에도, 표현은 설명적이거나 묘사되어 있지 않고 직관적이었다. 몇 개월 후 작업실에 서 있는 나무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도 그 나무 조각에선, 평면작업에서 보여지는 본인만의 직관적인 표현, 즉 나무를 다루는 기술에 사유의 흔적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조각은 빛의 충돌에 의한 드러남과 숨김을 표현함에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는 조각가의 몸을 닮아 가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셔츠에 톱밥이 이슬처럼 붙어있는 채로 서 있는 실루엣을 보면 예전의 그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작업과 몸짓은 이전의 것을 확실히 낯설게 함으로 본인의 제스처를 들어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선인장”은 공간에 있었다. 난 그것을 보면서 그가 ‘움켜쥔 손안의 나무’를 생각했다. 움켜쥔 채로 사유를 하고, 감정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상상을 해봤다. 비록 이전 작업과 다르게 내러티브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몸으로부터 전해지는 형식과 외적 형상의 조화는 공간에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부분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고전 양식을 보면 빛과 그림자는 사슬이라는 형식에 묶여져 있다. 근대 회화에 와서 비로소 형식은 해체되기 시작하고 명암보단 색채가 우리의 시선을 장악했다. 누가 말했는가! “색채가 가장 풍부한 그 순간이, 형태가 가장 완전한 때이다.” 어쩌면 그는 나무 “선인장”위에 색채를 입히고자 한 순간, 이 문장을 기억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색채를 머금은 목조를 보았다. “직관적인 몸의 동작으로 나무에 형상을 부여할 때, 그렇게 운동의 인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외형이 구체적인 실재를 대신할 때이다.” 이 문장으로부터 그는 분명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는 시각적인 외형이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는 양괘감에 의해서 인식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색채를 조각에 적용한다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색채에 의해 형상이 새롭게 혹은 다르게 보여진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중요할까! 일을 진행하며 사유의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이! 잘 모르겠지만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없는 듯한 그의 모습이, 오히려 표현하려는 대상에 더 다가가게 만드는 힘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인상적이다. 이에 더해서 나는 형태와 색채, 그리고 공간의 빛을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은은하게 입체감을 더하는 조명효과와 운주사터에서의 음과 양을 하나로 엮은 빛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개인적으론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모든 형상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물이냐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빛의 조도가 필요하다. 빛의 성질에 따라서 사물의 형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감각적으로 안다. 그래서였을까! 난 “천불천탑” 주위를 맴돌면서도 마른 땅 위의 메마른 가시덤불이 나에겐 더 매력적인 대상으로 비쳤다. 그렇듯 모든 입체작업은 재료와 빛의 충돌에 따라서 작업의 성질과 공간이 다채롭게 변하기도 한다. 그가 색채를 나무에 칠한다는 것은 실재에 다가서려는 행위라기보단 빛의 충돌과 간섭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뉘앙스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선인장”에 핀 색채를 평면으로 재현했다. 이젠 그의 그림은 직관적이지만 직관적일 수 없을지 모른다. 평면으로 재현된 “선인장”은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색채의 현상에 다가서려 하는 듯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어쨌든 작업을 하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일단 생각은 접자.